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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공동체 | 임동락 | 2025-06-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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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공동체 본문: 고전 12:4~13 은사문제로 고린도 교회에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은사 가운데 특별히 방언 은사를 독점적으로, 그리고 특권적으로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로 인해서 고린도 교회가 분열될 위험성을 발견하고 바르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언이 본질적으로 성령의 은사이기에 성령과의 관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바울은 생각한 것입니다. 은사라는 단어는 헬라어 ‘카리스마’의 번역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 바로 카리스마입니다. 권능을 말합니다. 성령은 헬라어 프뉴마입니다. 프뉴마는 바람, 숨, 기, 영이라는 뜻이 있는 단어이지요.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생명의 영이기에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성령을 창조의 영, 구원의 영, 부활의 영, 종말의 영 등등으로 불렀습니다. 성령의 능력 가운데 하나가 은사 수여입니다. 그 은사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고전 12:4절에서 바울은 은사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고 했습니다. 은사는 다양하나 그것을 주시는 능력인 성령은 같은 영입니다. 5절에서 바울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직분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는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는 하나님이자 곧 성령님이십니다. 6절에서는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합니다. 6절과 7절을 번역해서 읽겠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의 능력은 여러 가지이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모든 일에서 역사하십니다. 이런 일을 나타내심으로써 성령의 은사를 공동의 유익이 되게 하셨습니다’라는 뜻입니다. 4절부터 7절까지 내용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여러 은사가 성령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온다는 사실이 한 가지이고, 은사를 통한 성령의 나타나심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에 유익이 된다는 것이 다른 한 가지입니다. 즉 다양성과 공공성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8절부터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합니다. 8-10절에 여러 가지 은사의 목록이 나옵니다. 오늘의 교회와 연결되는 내용도 있고, 거리가 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 이 목록 중에서 방언과 방언 통역이 맨 나중에 나옵니다. 바울은 은사의 목록을 언급한 뒤에 11절에서 은사와 성령의 관계를 요약합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아멘! 이 구절에서도 역시 은사의 주도권이 성령에게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음 단락인 12절과 13절에서 은사 문제를 몸과 지체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이지만 몸에 딸린 지체는 여럿이고, 그것이 서로 다릅니다. 팔과 다리, 머리와 가슴과 허리, 눈과 코와 귀와 입의 기능은 분명히 다릅니다. 몸 안에는 더 다양한 장기들이 있습니다. 창자와 간의 기능이 완전히 다르지만 둘이 다 몸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지체는 교인들입니다. 다양한 은사로 살아가는 교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한 몸으로서의 유기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곧 성령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밝힙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아멘! 바울은 앞에서 교회 안에서 은사가 다양하지만, 성령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여기서는 그 은사의 다양성을 훨씬 뛰어넘는 문제까지 거론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유대인도 있고 헬라인도 있었고, 아직 종의 신분인 사람도 있고 자유 시민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극복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바울의 이런 주장은 혁명적인 발상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입니다. 이런 새로운 세계관의 토대는 교회가 성령 공동체라는 사실에 놓여있습니다. 성령 공동체라는 표현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실감 나게 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힘으로 경험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기에 개인과 사회에 생명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활동은 생명을 죽이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이 염려하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좀 더 들여다봅시다. 은사 문제로 논란이 벌어졌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바울은 7절에서 성령의 은사가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개역개정은 단순히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고 번역했지만 NIV 성경은 공동의 유익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바울이 절실한 마음으로 지금 편지를 쓰는 고린도 교회에는 공공이 아니라 사사로이 은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은사를 자랑의 기회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이로 인해서 교회의 공동체성이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13절 후반절에서 이상한 말을 합니다.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 성령을 마신다는 말은 문학적인 비유입니다. 이 표현은 같은 13절에 언급된 세례와 연관됩니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는 의미의 종교의식입니다. 이 종교의식의 출발은 예수에게 일어난 십자가 죽음과의 연합입니다. 그 십자가 죽음은 피이기에 세례는 이 피와의 연합입니다. 세례는 성령 사건이라는 점에서 바울이 “성령을 마신다.”라고 표현한 겁니다. 세례가 성령 사건이라는 말은 세례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세례 받고 성령의 잔을 함께 마신 우리가 지체로 참여하는 교회는 곧 성령 공동체입니다. 그 길은 자신의 은사(삶)를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고 공동선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집을 부리지 않고 그분께 마음을 열면 성령이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나타나심을 따라 각양의 은사와 직임에 충성하시는 귀한 일군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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