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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난 임동락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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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고난            본문 53:4~6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고난을 당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천국에서 천군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며 영원무궁토록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그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죄인들로부터 무시와 침 뱉음과 주먹질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벌거벗겨지신 채로 마지막 십자가에 매달리시기까지 모진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교회들은 이번 주간을 예수님의 고난주간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그 고난의 자리가 본래 저와 여러분의 자리였음을 기억하고,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남은 생애 동안 죄악을 멀리하는 복된 생애가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고난은 겟세마네의 동산의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귀의 강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가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5: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하였습니다. 이때 마귀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민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이제라도 메시야임을 포기하고 타협하여 자신의 생명을 구하라고 유혹했습니다. 메시아가 되는 것보다는 네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내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십자가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라는 속삭임으로,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십자가를 피할 수 있다고 하는 달콤한 유혹을 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십자가를 지게 될 경우의 어마어마한 고통에 대한 경고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를 피하게 하려는 유혹을 시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으신 것이죠. 그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반드시 짊어지셔야만 할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파탄에 이르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랑하는 자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하는 그 심령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제자 유다가 그를 배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가장 큰 고통과 절망을 가져오는 것들 중에 하나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입니다. 먹이고 입히고 돌봐 주고 온갖 정성을 다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돌아서서 발로 차고 배신할 때에 그 배신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과 쓰라림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 특별하게 가롯 유다를 믿고 사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돈주머니까지 맡기셨던 것입니다. 믿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돈주머니를 맡기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종의 몸값인 은 30세겔을 받고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온 세상에 죄악의 잔을 다 마시는 고통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짓지 않는 모든 죄, 추악한 죄, 더러운 죄가 가득 담긴 그 저주의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죄악의 잔을 마시기 싫으셨기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 26:39)”…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마시고 대신 짊어지고 심판을 받으시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몸서리치게 이 죄악의 잔을 마시는 것이 두려웠던지 아버지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네가 잔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두 번째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고난 당하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하시고, 로마의 군인들과 유대인의 하속들에게 잡혀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려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대제사장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을 채택해 놓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짓으로 모함하고 욕을 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와서“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26:61)는 말로 비아냥거리며 공격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신성모독 죄를 씌우고,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얻어맞으셨던지 눈이 다 부어 코와 얼굴이 하나가 되셨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신 것이죠. 그러한 정황 속에서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배반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에 그가 의지하던 수제자가 그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하며 맹세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할 때의 그 고독은 이루 말로는 다 할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너무나 큰 마음의 타격과 고통을 입으신 것입니다.

 

세 번째 주님의 고통은 빌라도의 뜰에서였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우유부단함에 너무나 마음의 실망이 컸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이 유대인의 시기로 고소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수차 예수님을 도우려고 했으나 군중의 압력과 정치적인 입장의 안정 때문에 정의를 짓밟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가는 길인 것입니다. 세상은 정치적인 타협, 군중들에게 호응하기 위해서 정의의 길이 확연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짓밟아 버리고 정의를 던져 버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그는 빌라도에게 배신을 당했으며 군중들에게도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며칠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만 해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열광하며 환영하던 그 군중들이 순식간에 돌변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하는 변화무쌍한 민심을 보고 주님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으셨겠습니까? 그러나 모욕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손으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으며 우주와 만물을 만드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그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이 땅의 백성들이 그 땅을 지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처참한 모욕을 가한 것이죠. 그리스도는 총독의 병영에서 갈기갈기 찢기도록 얻어맞으셨는데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병 고침을) 받았도다.(53:5)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은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갈보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을 때, 그 육체적 고통이란 이루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난이요 고통이었습니다. 잠도 못 주무시고 드시지 못하시고 수차례의 재판과 고문으로 매질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 길에 무거운 횡목을 지시고 몇 번이나 쓰러지시고 그리고 골고다에 이르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죄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대속할 수 있고, 유일하게 예수님만이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될 수 있으므로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은 무지한 종교인들과 군중들을 위한 연민의 정으로 더 마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던 그들이 마지막 날에 불과 화염으로 타오르는 지옥의 불 못에 떨어질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최후에 심판을 받아 아우성치며 그때에 몸부림치고 살려달라고 외쳐도 소용없을 그러한 형벌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시간으로 제 삼시(오전 9)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제 육시(정오12)부터 제 구시(오후 3)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십자가상의 주님께서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시고 “내가 목 마르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하시고 “내 영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하나이다.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 보배로운 피를 의지해서 아버지의 보좌 앞에 자유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 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나가면 그는 하나님 앞에 직행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양손과 양 발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앞에 가시와 엉겅퀴는 없습니다. 가시관 대신 영생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삶과, 가족과, 교회와, 나라에 넘치게 합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쁜 소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며 삽시다. 그리하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 위에 차고 넘치게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늘날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부활의 아침에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는 사망과 음부를 박차고 일어나서 영원한 영광 속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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